혹시 레이싱 게임 플레이하시나요?

레이싱 게임은 정말 오래된 비디오 게임 장르이긴 한데 요즘은 하는 분들만 하는 장르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오락실에 가면 자동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임들이 있었는데 점점 자동차 게임들이 현실감을 강조하는 시뮬레이션 쪽으로 쏠리면서 최근에는 레이싱 게임을 하는 분들과 안 하는 분들이 어느 정도 나누어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게임 즉, 레이싱 게임을 꾸준히 하는 편인데요. 오랫동안 플레이를 하다 보니 장르에 대한 애정만큼 생각도 많아집니다.

 

저는 레이싱 게임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팬이 된 것은 다른 많은 분들처럼 <그란 투리스모>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원조 플레이스테이션의 사양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으로 구현된 아름다운 그래픽(!)이나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면허증 시스템을 도입한 커리어 모드의 구성 등 빠져들만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제가 특히 좋아했던 점은 차에 달린 엔진의 위치나 구동하는 바퀴의 위치, 그리고 기어비라든지 스프링의 탄성, 타이어의 종류 같은 선택 가능한 요소들에 의해서 확연히 달라지는 주행감이었습니다. 이처럼 튜닝에 의해 조작감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서 때로는 스프링의 강도를 어이없을 정도로 약하게 해서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달리는 차나, 반대로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서 도로 주변의 경계석만 밟아도 튕겨 나가는 차를 만드는 등 장난도 치고, 때로는 진지하게 우승을 위해 코스 형태에 나름 최적화된 튜닝을 이리저리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만 요즘은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발매되는 기간이 늘어나고 <그란>이 닦아 놓은 콘솔 레이싱 시뮬레이터의 장점을 잘 공부한 다른 레이싱 게임 시리즈들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다른 게임들을 많이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포르자 모터스포츠>나?<프로젝트 카스>, <더트 랠리> 같은 게임들 말이죠.

 

이렇게 일정하게 방향을 공유하면서도 나름의 시각을 보여주는 레이싱 게임들을 보면 즐겁습니다. 어떤 게임은 캐주얼해서 조금 쉽게 조작할 수 있고, 어떤 게임은 좀 더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거나 차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진지한 게임도 있습니다만, 결국 달리고 추월하는 재미의 요소는 어느 게임이나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듯 레이싱 게임들은 각자가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플레이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합니다. 게임패드를 쓰든, 키보드를 쓰든, 레이싱 휠을 쓰든 관계없이 액셀을 누르면 가고, 브레이크를 누르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춥니다. 어차피 실재하는 차량을 바탕으로 재현하는 게임이니까 기본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차와 도로에 적용되는 물리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했느냐의 차이는 있습니다. 같은 산을 그려도 해석하는 화가의 터치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포르자 호라이즌>처럼 아예 서킷을 벗어나서 더 자유로운 주행에 재미요소를 집중시키는 게임도 있지만 그도 결국은 도로와 장애물, 경쟁이라는 요소로 압축됩니다.

이렇게 비슷한 형식의 게임을 반복 플레이하다 보면 그 게임이 마련한 환상에 푹 빠지기 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게 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걸음 물러서서 자기 스스로의 게임하는 모습이나 게임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관찰하는 경험은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메타 인지 같은 느낌입니다.

 

레이싱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격하게 단순화 시켜보면 기억할 부분을 기억하고, 지켜야 할 규칙을 따르면 되는 특별할 것 없는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코너나 장애물에 접근할 때는 적당한 위치에서 감속하고, 직선 코스에서는 다른 차 뒤의 라인을 따라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등 알아내고 그대로 시행하면 되는 규칙들입니다. FPS 같은 경우에는 ‘목표를 중앙에 넣고 트리거’ 같은 것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바람직한 조작 방법을 쉽게 알 수 있지만,?해야 하는 조작 보다 하고 싶은 조작을 하다 보니 언제나 실수와 리트라이를 반복합니다. 코너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차를 벽에 박거나, 코스를 이탈해서 빙글빙글 돌거나 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코너가 앞에 있을 때, 거기에는 경쟁자들도 있습니다. 지금 가속을 하면 코너를 돌기 위해 감속하고 있는 다른 차들을 한꺼번에 추월할 수 있는 기회. 그래서, 브레이크를 안 밟거나 너무 늦게 밟거나 살짝만 밟게 됩니다. 그렇게 무리하게 코너를 돌려고 하다 보면 위에서 말한 그런 실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더 빨리, 한꺼번에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증이 그런 실수를 만듭니다. 이렇게 실수를 하면 짜증과 함께 게임과 상관없는 일상과의 연결점이 자꾸 떠올라서 괴롭습니다. 평소에 하는 바보 같은 행동 들도 다 이런 패턴이지. 평생 여기서 벗어나지 않지. 그런 생각입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굳이 드리프트 주행 같은 겉멋에 집착하다 실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퀴가 미끄러져 헛돌고 차체는 진행 방향과 어긋나게 쏠리는 드리프트는 멋은 있지만, 차를 충실히 감속시켜서 미끄러지지 않게 달리는 그립 주행보다 더 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겉치레 때문에 실수하는 일 역시 실체 보다 화려함에 끌리는 평소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인지라 플레이하다가도 움찔움찔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레이싱 게임의 조작감, 소리, 그래픽 같은 요소들을 좋아하니까 계속 플레이하고는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명상처럼 자기 관찰을 하고 싶을 때 레이싱 게임을 켜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매되는 레이싱 게임 간의 공통분모가 많아져서 이렇게 같은 상황을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반복하는 색다른 재미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날 갔던 오락실에서 발견한 <데이토나 USA>처럼 전혀 딴 생각 안 날 정도로 숨막히는 발전을 보여주는 레이싱 게임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자동차 게임의 기본적 형태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픽이든 사운드든, 조작감이든 플레이하는 사람을 잔뜩 긴장 시키고 몰입시킬 정도의 어떤 변화가 있으면 그것도 멋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7년 올해는 <프로젝트 카스 2>와?<그란 투리스모 스포트>가 발매될 것 같은데 <프로젝트 카스 2>의 경우는 라이브 트랙이라는 시스템으로 시간이나 날씨의 변화가 실시간으로 변하고 노면 상태도 거기 따라 변한다고 해서 제가 딴생각하면서 주행 못 할 만큼 긴장 시켜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 중입니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는 E-스포츠로의 가능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쪽도 오래 기다려온 만큼 훌륭한 완성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해줄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Va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