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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z의 게임 다이어리 #2 ? 게임 테라피

저는 음악이나 영화처럼 게임도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하는 게임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찾는 취향 외에 특별한 경우나 상황에 따라 게임을 선택해본 경험을 가진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음악도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 때, 센티멘털해지는 마음을 치유하고 싶을 때, 세상을 향해 엿 먹으라고 고함치고 싶을 때가 다 다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특히 지금 내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게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편입니다. 마음을 정화하고 싶을 때는 ABZU, 뭔가를 때려 부수고 싶을 때는 DOOM(2016), 나만 이렇게 힘든가 자괴감이 들 때는 Beginner’s Guide,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는 Diablo3 등등… 그리고, 저는 제 아들에게도 이렇게 게임을 추천함으로써 기분을 바꿔 준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아들은 저를 닮아 상당히 내성적이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인데 당시 다니고 있던 유치원의 다른 원아들 몇 명에게서 언어적, 물리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거기 대해 분노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속상해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화가 날 때 그것을 적절하게 푸는 방법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분노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 분노를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이겠지만 자기의 화나는 마음, 거부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면서 점점 얼굴이 어두워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의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비록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당한 대우에는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분노를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입장이라, 혼자서 속앓이만 하다 자기 자신의 약한 마음을 스스로 원망하기까지 하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는 걸 포기하고 싸워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제가 권한 게임은 ‘건담무쌍’이었습니다. 어이없어 할 분도 계시겠지만 그 아이의 아빠인 저는 ‘사쿠라대전’에서 동료애를 배우고, ‘진삼국무쌍’을 하면서 자신감을 키웠던 기억이 있는지라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건담무쌍이 어떤 게임입니까. 눈 감고 버튼만 눌러도 클리어 된다는 비웃음을 사던 진삼국무쌍의 형제 게임으로 일부 보스전만 아니면 게임오버되기가 어려울 정도로 쉬운 게임입니다. 그래서 다른 액션 게임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이 게임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죠.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캐릭터가 기계, 즉 로봇이라는 핑계로 진삼국무쌍에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사지 절단이 난무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런 게임을 아이에게 시키려니 아무리 게임에 관대한 아내라도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는 게 당연했죠.


저 역시 공격의 대상이 로봇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광선검과 레이저 총으로 공격하는 폭력적인 경험이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자신감을 심어주려다 폭력 만능 주의가 심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죠. 일단 한번 하는 상황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거둘 생각과 함께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TV 앞에 아이를 앉히고 컨트롤러를 쥐여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건담무쌍에는 생각보다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지금이라도 컨트롤러를?빼앗을까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파일럿 캐릭터가 대사를 치면서 등장하는 경우는 특히 신경 쓰였는데요. 이 경우에는 보통의 필드 몹들과 달리 모빌슈츠 안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이 적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적 모빌슈트를 격파해도 죽거나 하지는 않고 달아나는 것으로 연출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는 파일럿이 비명을 지르며 산화하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들이 그걸 보고 제게 묻더군요. “아빠 저 사람은 죽는 거야?”라고. 저는 “터지기 직전에 탈출해. 너무 걱정 마”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건담무쌍을 무척 좋아해서 열심히 플레이했었고, 그 후 저와 함께 건담 애니메이션까지 재미있게 보면서 한동안 건프라 만드는 취미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건담무쌍을 하고 난 뒤의 변화는 있었을까.
우연일 수도 있고, 저의 상상일 수도 있으며, 우연히 변화의 타이밍이 맞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밝아졌다고 느낀 것은 사실입니다. 다행스럽게도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에게 게임을 통한 일기당천의 경험으로 호연지기를 길러주는 일.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한지, 가능하더라도 감히 추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이나 영화처럼 게임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역시 자연스럽고 그렇다면 어떤 게임을 권해줄까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몇 년이 흐른 요즘은 협동심이 부족한 것 같아 협동의 미덕이 플레이에 배어나는 배틀 블록 시어터나 레고 배트맨 같은 코옵 게임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1 Comment

  1. 앙마인형

    잠이 오지 않을 때는 Diablo3를 한다는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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