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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z의 게임 다이어리 #1 – 나는 어떻게 스팀 유저가 되었나

얼마전 닌텐도에서?새 게임기인?스위치가 발매되었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흥미롭게 살펴보다가 스스로 어? 이상하다라는?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예전 같으면 게임기가 나왔을 정식발매 전이라도 아주?무리한 가격만 아니면 해외판을 공수하려고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게임기가 나왔구나라며 관망하고 있는 자신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콘솔 또는, 게임기에 대해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이렇게 콘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 저의 변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듯 먼 듯 지나간 날, 불같은 팬심을 바탕으로 어떤 이들에겐 콘솔이 하나의 종교처럼 확고한 가치를 가지던 시기와 지금은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콘솔과 게임패키지가 게임이라는 놀이를 즐길 수 있던 몇 안되는 방법이었던 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많아진 것이 이유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 외에도 많은 의견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와중에 언제부터인가 콘솔 전쟁의 한가운데서 싸우던?팬보이 전사에서 싸울 명분과 에너지를 잃은 길 가는 사람?A 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와중에 스팀이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다른 직장인들처럼 느지막하게 퇴근해서 대충 씻고 잠시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척하다 은근슬쩍 컴퓨터 방으로 숨어 들어가서 졸리기 전까지만 게임을 합니다. 맨 정신으로 들어오건 취한 정신으로 들어오건 상관없이, 책상에 앉아 플레이하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즈음 침실로 사뿐사뿐 걸어가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아내 곁에 눕는 것이 일상인 셈이죠. 아내는 다행히 나의 이런 게임 생활에?딴죽을 걸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저와 연애시절 같은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었고 덕분에 게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는 듯 합니다. 다만, 제가 잠시 와우를 하던 시절만은 예외였는데, 아침에 외출한 아내가 늦은 저녁에 귀가해서는 나갈 때 본 것과 똑같은 포즈로 앉아서 와우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울먹이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제가 화낼까 봐 참고 말을 못했는데, 제발 와우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게임을 할 때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보여서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저는 와우를 접고 패키지 게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다거나 안타깝다거나 하는 감정은 없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사실 온라인 게임에 그다지 애정이 깊지는 않았거든요. 심리테스트에서 ‘당신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나요?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충전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단연코 후자에 속하는 타입인지라 사실 와우를 할 때도 솔로잉 위주로 플레이했었고, 다시 패키지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 저는 차라리 와우의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다시 게임기와 PC를 번갈아 가면서 이런저런 게임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플레이했습니다.

그러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때문에 깔아 둔 스팀에 점점 정을 붙이게 되었는데, 제 경우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음주 구매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서비스나 플랫폼에서도 카드로 게임 결제하고 바로 다운로드 받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엔 제 컴퓨터에는 스팀이 깔려 있었기에 스팀으로 게임을 충동구매하면서 라이브러리가 쌓이게 되고 그 라이브러리 때문에 스팀의 영지 안에 자연스럽게 안주하게 된 것입니다.

피곤하고 몽롱하게 취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의 게임 게시판이나 스팀 시작 화면의 세일 정보를 훑다 보면, 갑자기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어지고 지금 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고전 게임은 지금이라도 사서 소장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고, 내 취향이 아닌 게임도 뭔가 이제까지 몰랐던 신선하고 새로운 재미를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것입니다. 술은 참 세상 많은 것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쌓여 가던 스팀 라이브러리는 어느덧 이제까지 모아왔던 게임 패키지들을 훌쩍 넘게 되고 아이가 크면서 가족들 때문에 TV와 게임기를 밤늦게 켤 수 있는 여건도 여의치 않아져서 게임기를 켜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제는 새로운 게임기가 나왔는데 설레지 않는 일반인이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놀랍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저도 모든 게임은 패키지를 만질 수 있어야 진짜 같고, 밀봉된 포장 비닐을 급한 마음으로 뜯어내고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뒷면의 동심원을 조명에 비춰본 다음 두근거리며 트레이에 집어넣는 그 느낌을, 혹은 카트리지나 팩을 끼운 후 게임기를 구동 시킬 때의 그 두근거림을 너무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절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잠 안 오는 새벽의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맛깔나게 올린 신작 게임의 소감문을 읽다 보면 일어나는 그 욕심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죠. 아침이 되어 그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용산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이제는 한밤중이라도 바로 그 순간에 게임을 사서 플레이할 수 있으니 이런 유혹을 뿌리칠 재간이 제겐 없었습니다. 세상엔 아직 패키지의 로망과 의리를 지키는 분들도 많지만, 그런 신념 역시 제겐 없었습니다.

이제 PC나 스팀뿐 아니라 게임기에서도 온라인 다운로드 방식으로 게임을 사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R 모 웹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열정적인 분들의 컬렉션을 보면 저는 나름대로는 게임의 로망을 고집하는 마니아인 줄 알았지만 단지 평범하게 필요에 따라 게임을 소비하고 있는 일반인일 따름이구나 하는 자각이 듭니다. 상황 따라 흐름 따라 플레이하다 보니 신념은 쉽게 바뀌고 로망보다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소비도 사랑의 방식 중 하나이니 괜찮지 않을까라며 굳이 설득력 없는 변명을 해봅니다.

Vanz

1 Comment

  1. 노크

    스팀도 접근성이 좋지만 pc를 켜고 끄는것도 귀찮아서 요즘은 스위치가 참 절묘하게 나왔구나 생각하고 있네요 휴대기로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짬내서 가볍게 즐기고 집에 와서는 휴대모드나 거치 모드로 손쉽게 즐길수 있는게 정말 좋은거 같아요.
    스팀게임중 인디게임의 경우엔 스위치로 많이들 발매할거 같아서 기대중이네요 문제는 닌텐도가 게임 가격을 엄청 받아먹는다는건데 e3이후에 본격적으로 게임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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