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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thatgamecompany, 2012) 플레이 당시 리뷰

정리하다가 뜬금없이 2012년 저니 플레이 직후의 감상문을 발견했습니다. (2012.03.20)

기록 및 공유를 위해 옮겨둡니다. (이게 벌써 4년 전이라니!) 노잼주의요.

3월 중순 PS3로 발매된 따끈따끈한 타이틀.
주말 밤에 소리 엄청 크게 틀어놓고 플레이했다. PSN 가격은 만팔천원 정도.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감상은 가려 놓는다. (누가 보겠느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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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Flower를 해본 터라, 다행히 최소화된 인터페이스나 게임의 목표 제시가 없는 데 대해서는 많이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텍스트가 나오고, 퀘스트가 나와야 왠지 게임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뭔가 있지 않을까’하며 연신 OXㅁㅅ버튼을 눌러댔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날아 올라가는 게임이었다.

Journey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성이나 힌트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게임 전체를 통틀어 ‘누르고 있기’ 따위의 텍스트(튜토리얼에서)가 한두 번 나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문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작부터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보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이리로 가는 것이 맞을까. L1 L2나 R1 R2는 누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 작은 비석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 대고 누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하며 기존 게임의 컨벤션을 계속 대입해보려고 하다가 퍼뜩 떠오른 것이 ‘Journey’라는 제목이었다. 그냥, 어디론가 가면 되겠거니, 여정이 중요한 것이겠거니.

첫번째 챕터를 지나면 조력자가 나온다. 나와 똑같이 생긴 NPC다. 스카프의 길이는 조금 다르다. 보기에 내 것이 좀 더 긴 것 같다. ?O키를 눌러 소리와 빛을 내면서, 나를 왠지 인도하는 것 같다. 조력자는 흙탕물 폭포인지 모래 폭포인지, 위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 뒤로 가서 O키를 연타한다. 저기로 오라는 거구나, 역시나 폭포 뒤로 가니 스카프의 길이를 길어지게 하는 빛나는 아이템 같은 것이 있다. 계속 나보다 반보 앞서 가며 갈 곳을 인도해준다. 조력자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스카프에 에너지가 차는데, 그 에너지로 점프와 비행이 가능하다. 나와 그 튜토리얼 NPC는 허공에 스카프 다리를 놓으며 저 멀리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간다.

챕터를 더 진행하다 보면, 어두운 신전 안으로 이동한다. 신전 안에는 돌로 된 용같은 것이 있는데, 머리에서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을 비춘다. 그 빛에 감지되면 죽게 된다. 마침 신전을 통과하는 길 중간중간에는 부서진 돌기둥 같은 것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 숨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가운데로 뻗은 길로 가려고 하는데, 동료는 석룡을 피하자며 구석으로 가서 신호를 보낸다. 동료가 인도하는 데로 가면 안전하게 갈 수 있겠지만, 그 동료는 엄폐물 주위로 조심조심 가려고만 해서 답답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함께 붙어 있을 때 채워지는 에너지도 별로 필요가 없었다. 점프나 비행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 NPC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중앙 길의 부서진 돌기둥에 숨어서 과감히 이동하고 있었던 차였다. 가운데로 이동하던 나는 돌기둥 아래 숨어 있었고, 석룡이 접근했다. 나보다 뒤처져서 따라오던 동료는 내가 숨어있는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다 석룡에게 발각되었다. 석룡은 동료에게 붉은 레이저 같은 것을 가차없이 쏘았다. 석룡은 내 뒤쪽으로 유영했고 동료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나름 황급히 동료에게 다가가 O키를 눌러 말을 걸었다. 동료는 자리에 꿇어앉아 있었다. 함께 붙어 있으면 회복이 된다던가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찰나, 동료는 바닥과 가까운 부분부터 천천히 산화되었다.

이거 뭐야. 의아한 생각도 잠시, 조금 더 가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출구가 나왔다. 챕터의 마지막은 다른 모든 챕터와 마찬가지로 O키를 길게 눌러 돌기둥을 활성화시켜, 석판에 그려지는 앞으로의 여정 예고편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빛기둥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해졌다. 빛기둥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향으로 남겨두고 그냥 그 앞에서 끝이 날 것인가, 아니면 모종의 반전이 있을 것인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향해 가는 것처럼, 저게 진짜 오아시스일지, 아니면 신기루일지, 혹은 전혀 다른 종류의 환각일지 기대하는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이었다.

엔딩은 평범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패드를 잡고 뒤로 기대어 앉아, 별이 된 내가 이제까지 두어시간 동안 거쳐온 여정을 되짚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아름답다.
수많은 개발자들의 이름과, 스태프들과, 소니의 사업부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로컬라이징 담당들의 이름까지 올라간 후, ?’니가 같이 플레이했던 친구들’이라는 제목과 함께 친구들의 PSN 아이디와 식별표가 하나씩 표시됐다. 세어보니 열 명이 넘는다. 챕터 2에서 만났던 그 튜토리얼 NPC같은(감쪽같이 속을 수 밖에 없었다) 친구도, 중간 챕터에서 석룡에게 죽은 친구도, 모두 어딘가에 있는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물론 중간부터 반신반의 하긴 했지만(챕터 2의 그 친구는 완벽한 튜토리얼 NPC같았지만 AI라고 보기엔 너무 제멋대로인 친구도 있었다), 엔딩 크레딧 마지막의 그 모르는 ID들이 나왔을 때의 그 감동은 뭔가 묘해서, 언어로 표현하기가 애매하다. 내 생각에 Journey의 가장 큰 스포일러는 “걔 그거 다른 플레이어야”라는 말인 것 같다. (설마 나만 몰랐어?!)

사실 이런 식의 ‘멀티플레이어가 아닌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데몬즈 소울 같은 것도 있었고 해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여정을 함께하는 단 한명의, 익명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은 하기 힘든 경험이다. (게다가 내 Journey 동반자는 중간에 죽었다고! 그게 죽은 건지 어떻게 된 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일요일 밤에, 두 시간에 걸쳐, 18,000원짜리 고퀄리티 예술 영화를, 각기 다른 10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며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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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타박

    제가 처음 저니를 플레이했을때 느꼈던 느낌 그대로네요. 저는 플라워를 해보지 않아서 더 당황스러웟던것 같아요. 늦었지만 새우님 글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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